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무엇을 하면서 있는 것이라거나, 무엇을 위해 있는 것이라거나, 왜 있다거나, 어떻게 있다거나, 어느 자리에 있다거나, 어느 때에 있다거나 그런 것 말고 그냥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린 모두 지금 이 자리에 그냥 이렇게 있잖아요? 그냥 그거면 충분한 겁니다, 자꾸 더 이상을 바라지 마세요.  이유를 붙이지도 말고 잡다한 것은 그냥 놓아버리고 그냥 이렇게 있어 보세요, 무엇을 하면서 있지 말고 무엇을 꿈꾸지도 마세요. 보거나, 듣거나, 냄새 맡거나, 맛보거나, 감촉을 느끼거나, 생각을 일으키거나 그러하지 않더라도 우리 내면은 충분하니까요. 세상이 바빠졌다고 나까지 바빠질 필요는 없습니다.  세상이 번잡스러워지다 보니 또 그 속에 너무 익숙해지다 보니 평온과 고요한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모습들을 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요. 심지어 충분한 휴식과 고요 평화로운 시간이 오더라도 사람들이 그런 시간을 애써 피해 버립니다, 가만히 있지를 못해요, 친구에게 전화라도 걸어야 하고, TV라도 켜야하고, 노래라도 켜 놓고 따라 불러야 합니다. 머릿속으로 상상하거나 미래의 계획이라도 짜야 하고 심지어 없는 걱정이라도 만들어 해야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못 견딜 만큼 초조해 합니다.  평화로움과 고요한 침묵을 누릴 수 있는 감각은 누구에게나 이미 주어져 있습니다 그 평온의 감각을, 속 뜰의 본래 향기를 되찾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그냥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자꾸 하려 하지 말고, 무엇이 되려고 애쓰지 말고, 찾아 나서지 말고 그냥 그냥 있으면 됩니다. 지금 여기에 그냥 있으면 됩니다. 가만히 비추어 보고 그저 느끼면 됩니다. 무엇이 되려고 하지 말고 무엇을 하려고 하지 않으면 지금 이 자리가 다 된 자리이고, 다 한 자리입니다. 이미 다 되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성불이라 하고 주인공이라 하는 것입니다.  본래 자성불 마음자리는 늘 밝게 드러나 온누리 법계를 환히 비춥니다. 다만 우리가 보지못하는 것뿐이지 보...

집착을 놓고 인연은 흘러가게 두라

  수행자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집착은 놓고 인연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 말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는 길이며 불교의 모든 교리를 실천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은 인연 따라 만들어지고 인연 따라 소멸하는 인연생기(因緣生起)의 법칙에 따라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움직이는 법칙이 바로 인연 과거의 법칙인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인연을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내가 인연을 거스른다고 해도 그것은 거스른 것이 아니며 거스르고 싶다고 해도 거스를 수 없는 노릇입니다.  이 세상 유정무정 어느 존재라도 인연의 법칙에서 예외인 존재는 없기 때문입니다.  내 앞에 펼쳐진 그 어떤 인연이라도 그것은 내가 스스로 만들었고 스스로 받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할진대 내 것이 아니라고 우겨 봐야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좀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왜 하필이면 이렇게 못난 외모를 가지고 태어났을까 하고 인연을 탓한들 소용이 없습니다. 태어날 적부터 부잣집에 태어났으면 좋았을 터인데 왜 이렇게 가난한 집에 태어나 고생하는 거야라고 탓한들 아무 소용이 없는 노릇입니다. 그것은 내 인연 따라 내 스스로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외모가 조금 못났어도 가난한 집에 태어났더라도 그 인연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는 적극적인 삶의 자세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금 남편과의 자식과의 혹은 부모님과의 인연이라든가 직장의 인연, 부부의 인연, 배움의 인연, 친구나 동료의 인연 등 지금 나의 삶의 환경들은 나에게 주어진 내 인연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송이 하나조차 정확히 떨어져야 할 곳에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만큼 자신의 인연은 정확히 그 자리에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인연에 내 잣대를 가지고 온갖 좋고 싫은 분별을 일으킵니다.  좋은 인연을 만나면 애착하여 더 잡으려고 애를 쓰고 싫은 인연을 만나면 애써 버리려고 ...

명상의 힘

  우린 누구나 이따금씩 고독이나 허무, 허탈감을 느끼곤 합니다. 세상살이가 지독히 괴로워서도 아니고 똑부러지게 허무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우린 이따금씩 알 수 없는 허무감과 고독에 빠져듭니다. 확연하게 붙잡을 만한 행복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 심연에 큰 설렘을 가져올 이벤트를 꿈꾸는 것도 아니고, 살다 보니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의 진부함에 사로잡혀 이따금씩 내가 지금 무얼하며 살고 있는지, 내가 가고 있는 곳은 어디인지, 딱히 잡히지 않는 경우에도 여지없이 그런 해답없는 허무감은 우릴 덮치곤 합니다.  누구나 그런 고독감은 있게 마련입니다. 누구나 인생의 그 어느 때의 지독한 허무감과 한바탕 싸움이라도 벌여야 할 때가 있나 봅니다. 특히 요즘 같이 싸늘해지는 겨을이면 더욱 마음을 휘젓고 다니는 고독감에 많은 이들이 허탈해 늪 속에 빠져들곤 하는 것을 봅니다.  알 수 없는 허무감에서 빠져나오려고 일기며 편지도 써보고 어디론가 여행도 떠나 보고 친구들과 만나 수다도 떨어보고 고독을 안주삼아 한잔 거하게 술도 마셔보지만, 잠시의 발버둥은 오히려 더 큰 고독으로 나를 몰아갈 뿐 그 속에서 해답을 찾기란 참으로 어렵다는 이치만을 더하고 맙니다. 그것은 너와 나의 문제가 아니며 지금의 우리만이 가진 문제가 아닐 터입니다. 인류가 가진 공통적인 부분일 것이란 거창한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고독감과 허무감은 우리 내면에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이끌어져 나옵니다. 저 밑바탕에 나도 모르게 숨쉬고 있는 인생 근본의 허무감이랄까요....우리네 겉모습의 무상성(無常性), 혹은 공(空)한 이치라든가, 일체개고(一切皆苦)라고 말씀하신 부처님의 정견(正見)과 같은 이를테면 그런 존재 근본의 괴로움 같은 것 같은 것들 말입니다. 이를테면 '태어난 사람은 언젠가 꼭 죽어야만 한다'든가 '이 세상에 항상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이치, '고정되거나 고정되게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욕망을 추구하며 살지만 ...

행복하려 한다면...

 진정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삶 속에서 자유롭기를 바란다면,  내면이 늘 평화롭기를 바라다면,  그리고 그 마음이 간절하다면,  이제 마음으로의 여행을 떠날 준비는 된 것입니다.  세상에 살면서 세상의 도리를 뛰어 넘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 하나 가지고 행복할 수 있어야지  조건에 휘둘려 마음 밖에서 행복을 찾으려 해서는 안됩니다.  행복이며 평화 자유 그 어떤 것이라도  내 안에서 활짝 꽃피울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에 일을 내려 놓아라

  '마음의 일이 적어야 한다' 이 말은 유난히도 현대인에게 필요한 경책입니다. 이 짧은 생을 살며 우린 온통 정신없는 일로 바쁜 나날을 보냅니다.  '이 일만 다 하면 끝이다' 하는 희망도 그 일이 끝남과 동시에 또 다른 일의 시작으로 이어집니다. 그러지 않아도 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에선 잠시도 일 없음을 원치 않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난 아니야' 싶겠지만 모두들 마음의 일을 너무 많이 만들며 살아갑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끊임없이 일을 만들어 냅니다. 일이 없으면 사람들은 불안함을 느낍니다. 사람이란 어떻게든 끊임없이 움직이려고 애를 씁니다. 잠시 누군가를 기다려야 할 조용한 시간이 주어지면 대부분의 사람은 어쩔 줄 몰라하며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찾습니다.  노래를 듣던가 신문을 읽던가 아니면 잠을 자던가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게 됩니다. 마음속에 의도를 지으면 그것은 모두 일이 됩니다. 잠깐 짬나는 시간에 잠이라도 자 둬야지 하고 작의(作意)하여 눈을 붙이게 되면 그것은 '잠자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잠이 오니 자연스레 눈이 감김에 몸을 맡겨야 하지요. 이렇듯 소소한 데에도 우리는 일을 만들어서 해나갑니다. 불안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방법으로 사람들은 끊임없이 일을 만들어 움직이는 데서 풀고자 합니다.  무언가를 하지 않고 있으면 남들에게 뒤처지고 말 것이라는 불안감이 우리에게 수없이 많은 일과 스트레스를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자신을 남에게 드러내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세상과의 경쟁에서 이겨야만 한다는 강박 관념이 우리를 휘어감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경쟁 심리가 우리의 삶을 너무 빠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우리의 삶에 너무 많은 일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우리 마음을 너무 복잡하고 정신없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너와 나라는 존재는 둘이 아닌 하나인데 그 사실을 모르다 보니...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는 바람처럼

 우리는 그다지 하지 않아도 되는 말들을 참으로 많이 하고 삽니다. 절제되지 않은 말, 거친 말들이 자연스러운 용어가 되어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말 한마디 한마디는 어느 한마디 놓칠 것 없이 모두가 구업(口業)이 되어 버립니다. 꼭 필요한 말만 하고 살아도 우리가 평생동안 짓는 구업은 참으로 많을 것입니다.  말 한마디 바르게 하지 않은 연유로 지옥고를 면치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마땅히 경계할 일입니다. 참으로 요즘은 숱한 말들이 난무하는 세상입니다. 해야 할 말, 하지 말아야 할 말에 걸러짐이 없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아는 말들의 대부분은 그렇게 필요하지 않은 말들이며 오히려 상당수는 하지 말았어야 할 말들로 가득합니다. 그대로 구업만 늘려가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입이 가벼우면 생각이 가벼워지기에 경계에 닥쳐 금세 울고 웃고 휘둘리기가 쉬워지며 온갖 화를 만들어 내기에 제 몸을 스스로 깎고 멸하게 됩니다.  "보은경"에서는 사람에게 온갖 화가 생기는 것은 입으로부터 시작한다. 맹렬한 불길은 능히 한 세상을 태우지만 구업은 무수한 세상을 태운다. 일체 중생의 화는 입으로부터 나오나니 구업은 몸을 깎는 도구이며 몸을 멸하는 칼날이다.  또한 "사자 침경"에서는 화는 입으로부터 나와서 천가지 재앙과 만가지 죄업이 되어 도로 자신의 몸을 얽맨다라고 했습니다. 경전에서 보듯 입이라는 것은 온갖 화를 일으키고 재앙과 죄업을 만들어 내며 그로 인해 스스로의 몸을 멸하게 하는 칼날과도 같은 것입니다. 언어를 씀에는 모름지기 절제된 맛이 있어야 합니다.  한마디의 말도 어렵게 어렵게 꺼낼 줄 알아야 수행자라 할 것입니다. 마땅히 절제하되 입을 열 때에도 맑게 정제된 언어를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가만히 언어 생활을 관찰해 봅시다.  그래서 불필요한 말들을 하나하나 줄여 보는 것입니다. 온전한 말, 밝은 말, 꼭 필요한 말들만 어렵게 어렵게 꺼내놓는 것입니다. 말이 줄어들면...

현재를 주시하고 과거와 단절하라

 과거는 없습니다. 과거란 도대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과거는 결코 잡을 수 없습니다. 과거는 결코 현실이 될 수 없습니다. 과거는 꿈과 같고 신기루와 같으며 환영과 같습니다. 꿈이며 신기루와 환영을 잡을 이유가 없듯, 과거에 걸릴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린 온전히 과거 속에서 살아 갑니다. 우리의 대부분이 과거에 갇혀 삽니다. 과거의 일에 얽매이며 그로 인해 답답해 합니다. 신기루 속에서, 꿈속에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신기루를 실제로 착각하는 것의 결과는 '괴로움'입니다. 환영 속을 헤매며 사는 사람은 어리석습니다. 과거라는 신기루, 환영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괴로우며 어리석습니다.  '나'란 과거입니다. 나라는 이름이며 육신, 성격, 능력, 재능, 취미, 특기, 좋아하는 꽃이며, 미워하는 사람, 답답했던 일들.... 내가 스스로 '나'라고 생각하는 모든 실체는 과거로부터 옵니다. '나'의 뿌리는 과거에 있습니다. 과거라는 신기루, 환영 속에서 '나'라는 또다른 환영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 빠져 헤어나질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과거에서 만들어진 '나'는 내가 아닙니다. 과거에 만들어진 이름이 내가 아닙니다. 과거에서 만들어 놓은 내 성격이 내가 아닙니다. 과거에 만들어 놓은 능력, 취미, 특기는 내것이 아닙니다. 과거에 만들어진 돈, 명예, 권력 또한 내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 만들어진 모든 것은 이미 내가 아닙니다. 이미 과거의 '나'는 내가 아닙니다. 참나를 찾고자 한다면 과거의 '나'와 단절을 선언해야 합니다.과거를 죽이지 않고서는 결코 새로운 '참나'의 탄생을 지켜볼 수 없습니다.  과거와의 단절을 통해서만이 '참나'를 만나 볼 수 있습니다. 과거를 놓아 버리면 미래가 자유로워지며 그리고 나면 이제 '지금, 여기' 라는 현재만이 남게 됩니다. "지금, 그리고 여기...